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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디자이너

기획하고 전략짜는 UX 디자이너의 하루

by Nomad Designer 2021. 8. 15.

UX 디자이너로 일을 하다 보면 정말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는 동료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필드 분야가 넓은 만큼 각각의 디자이너가 중요하게 생각하거나 좋아하는 스페셜티 분야도 다양해요. 사실 디자이너의 역량에 따라, 조직의 짜임에 따라, 회사의 요구에 따라, 맡은 일이 달라지기도 하고요. 팀의 유일한 디자이너는 엄청나게 많은 종류의 업무를 수행하게 됩니다 (팀의 규모와 구성에 따른 디자이너의 역할과 업무 이야기). 

 

저는 프로덕트 기획, 디자인 전략, 프로젝트 매니지먼트에 관심이 참 많습니다. 타이틀은 디자이너인데 비주얼 디자인은 참 못합니다. 예쁜 게 뭔지는 아는 것 같은데 예쁜걸 못 만들어요. 보통의 날은 비즈니스 관계자(business stakeholder)랑 미팅도 하고 프로덕트 매니저랑 한바탕 싸우다 보면 하루가 다 갑니다.

 

제가 처음 이 팀에 들어왔을 때 팀이 새로 개편되는 과정이었어요. 오래 한 팀으로 일하고 프로덕트에 애정도 지식도 많은 PM, 엔지니어, 디자이너들이 다 회사를 떠나고 회사에 새로 들어온 저, 엔지니어로 일하다가 어쩌다 프로덕트 매니저에 처음 뽑히게 된 새 PM, 프로덕트에 지식이 하나도 없는 엔지니어들로 싹 물갈이가 됐죠. 엔지니어링 팀 교체야... 뭐 그래도 아주 없는 일은 아니니까 괜찮았는데, 처음 프로덕트 매니저를 맡은 PM이라니... 본인 업무도 처음 해보는데 디자이너와 협업도 처음 하는 분이어서 처음 반년 정도는 하나하나 다 짚어서 필요한 것 들을 알려줬어요. 

 

돌아보면 오히려 초짜 프로덕트 매니저 덕분에 내 취향대로 팀을 셋업 하는데 도움이 됐던 것 같아요. PM이 갈팡질팡 하는 동안 제 입김이 세졌거든요. 그래서 팀이 새로 짜인 지 일 년쯤 지난 지금은 제가 관심 많고 좋아하는 분야에 중점을 두고 하루하루 일 하고 있어요.

 

며칠 전에 회사에 들어온 신입이 하루 종일 저를 따라다니면서 쉐도윙(shadowing) 했는데, 블로그에도 제 하루 일과에 대해서 나눠보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그래서 정리해 본 기획하고 전략 짜는 디자이너의 하루,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되길 바라요!

 

새로 들어온 디자이너와 함께 업무를 하나하나 같이 하다보면 저도 스스로를 많이 되돌아 보게 됩니다.

 


 

기획하고 전략 짜는 디자이너의 하루

8:00a.m. 커피 챗 (coffee chat)

코로나 팬데믹이 터지고 모두가 집에서 일하기 시작하고 나서 시작된 저희 팀의 "미팅"이에요. 보통의 출근 후 탕비실에 가서 커피 한잔을 내리고 일찍 온 동료들과 인사와 담소를 나누던 일상이 그립다고 팀원 중 누군가 말했어요. 그래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미팅 방"을 하나 팠습니다. 아침에 일찍 로그인 한 누구나 자유롭게 들어와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도록요. 저도 어제 먹은 멕시코 음식과 새로 나온 영화에 대해서 떠들다가 다음 미팅 시간이 다 되어서 인사를 하고 나갑니다. 

 

 

8:30a.m. 아침 스탠드 업(daily stand-up) 

발란스 팀 (혹은 크로스펑셔널 팀) 스탠드 업 미팅에 참석해서 팀원들이 어제 무슨 일을 했는지, 일 진행 경과는 어땠는지 나눕니다. 저는 어제 있었던 중요한 미팅 결과를 나누었어요. 기획 중인 프로젝트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짧게 설명하고 도움이 필요한 일을 다시 한번 부탁합니다. 

 

 

8:45a.m. Weekly Design Meeting

오늘은 화요일. 발란스 팀과 디자인 미팅이 있는 날입니다. 매주 화요일 아침에 75분간 디자인에 대한 어떤 토픽이던 나누고 피드백하는 시간을 갖습니다. 제가 몇 년 전부터 써오던 디자인의 영향을 늘리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같이 일하는 프로덕트 매니저, 엔지니어, 비즈니스 관계자들이 디자인적 생각 능력을 배우고 받아들이도록 (embedded design culture) 밑 작업하는 거라고 생각하면 되죠. 오늘의 안건은 어제 분석한 유저빌리티 테스트(usability test) 결과입니다. 진행 중이던 프로젝트 디자인을 유저들에게 보여주고 피드백을 받았는데, 그 테스트에 대한 내용과 결과를 나누었어요. 테스트에서 반복적으로 들었던 내용들을 반영해서 새로 바뀔 디자인을 대략 설명해줍니다. 미팅할 때 우리 팀은 참 조용해요. 몇몇 사람들 이름을 불러서 의견과 도움이 필요한 내용들을 묻고 다들 더 할 말이 없는 것 같아 미팅을 일찍 끝냈습니다.

 

 

9:30a.m. 휴식 

미팅이 일찍 끝나면 그 시간에 일을 더 해야 할 텐데, 그렇죠? 오늘은 미팅이 5개나 백투백(back-to-back)으로 잡혀있는 날이라 미팅 일찍 끝나고 남는 시간 잠시 휴식을 취하기로 합니다. 커피를 한잔 더 내리고 고양이 밥을 챙기다 보면 금세 다음 미팅 시간이 되죠. 

 

 

10:00a.m. Shared components touch-base 

현재 기획 중인 프로젝트를 준비하다가 다른 팀에서 쓰고 있는 컴포넌트(component)와 같은 목적, 비슷한 디자인인 컴포넌트를 두어 개 발견했어요. 즉시 담당 디자이너들과 미팅을 잡고 지난주에 다 같이 모여서 각자가 가지고 있는 컴포넌트의 목적과 배경, 문제점등을 나누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미팅입니다. 세명의 디자이너가 지난 한 주간 각자의 팀원들과 컴포넌트의 문제점에 대해 상의하고 다시 모였죠. 돌아가며 알아온 정보들에 대해 나누고 어떻게 하면 비슷한 컴포넌트의 디자인을 통일하면서 현재의 문제점을 고칠 수 있을지 상의합니다. 다행히 컴포넌트의 디자인을 통일하고 기능을 업데이트하자는 의견에 모두 동의했어요. 앞으로 한 주간 각자 프로덕트 매니저와 타임라인에 대해 상의하고 다음 주에 프로덕트 매니저들과 다 함께 만나기로 정합니다. 참 뿌듯한 미팅이었네요.

 

 

11:00a.m. 개발자 AC 고치기 

이번 주에 그루밍(grooming) 해야 하는 개발 티켓들이 딱 열두 개 있네요. 프로덕트 매니저가 미리 써 둔 티켓의 정보를 살펴보고 개발 수락 기준(acceptance criteria, AC)을 손봅니다. 프로덕트 매니저에게는 기대 행동(expected behavior)을 위주로 티켓을 써달라고 부탁했어요. 그렇게 티켓 초안이 완성되면 제가 티켓을 넘겨받아서 개발자가 신경 써야 하는 인터렉션(interaction)이나 접근성(accessibility)에 관한 내용을 더하고 디자인 콤프(comp)를 티켓에 첨부합니다. 인터페이스(UI) 티켓 중 카피나 콘텐츠가 중심인 티켓은 따로 카피라이터에게 넘겨서 디자인과 티켓 내용을 컨펌받죠. 모든 과정이 끝난 티켓은 일단 백로그(backlog)에 넣어뒀다가 다음 스프린트(sprint) 그루밍 때 각 티켓의 소요시간을 예측해서 스프린트에 포함시킵니다.  

 

점심 준비는 빠르고 쉽게 휘리릭!

 

11:30a.m. 점심준비

열심히 티켓 정보를 수정하는데 배가 고파졌어요. 빨리 점심을 준비해봅니다. 냉장고에 남은 음식도 없고 하니 그냥 짜파게티나 끓여먹죠 뭐. 냉동만두도 몇 개 구워서 곁들이면 배는 채울 수 있습니다 ㅎㅎ 밥을 먹으며 티켓을 마저 손봐서 다 넘깁니다.

 

 

12:15p.m. VOA Communication Strategy 프레젠테이션 준비

오늘 3시에 VOA(Voice of Associates, 직원 서비스 관리 시스템) Communication of Strategy(전략 전달) 위원회 모임이 있습니다. 다음 주에 그룹장을 포함한 그룹 내의 모든 매니저들에게 프레젠테이션을 하기로 한 게 있어서 그 내용을 준비해 봅니다. 사실 이 위원회는 정말 가벼운 마음으로 들어왔어요. 코로나 시작 이후 현재 회사에 들어왔고 회사 사람들을 한 번도 직접 만난 적도, 친분을 쌓을 기회도 없었어서, 사람들도 만나고 친분도 쌓을 겸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일이 굉장히 힘듭니다. 사실 다른 위원 회원들이 무슨 얘길 하는지도 모르겠고 심지어 지금 우리가 하는 프로젝트가 뭔지도 제대로 모르겠어요! 엄청 스트레스가 심하지만 다른 위원 회원들의 대화나 태도 등에서 스스로를 돌아보고 배우는 점들이 꽤 많아요. 그래서 관두지도 못하고 벽에 붙은 파리처럼 빌빌 거리면서 간신히 붙어있습니다. 언젠가 저도 이 모임에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제발 그랬으면 좋겠네요.

 

 

1:30p.m. 카피라이터 1:1

매주 화요일 오후에는 카피라이터(copywriter)와 1:1 면담을 합니다. 가볍게, 어떻게 지내는지, 사적인 이야기와 안부를 주고받고, 프로젝트 진행상황에 대해 보고를 받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서 카피나 콘텐츠 관련 도움이 필요하면 프로젝트 내용과 제가 원하는 방향성을 설명해 줍니다. 오늘은 어제 부탁했던 카피를 같이 리뷰했어요. 카피에 훅(hook)이 좀 더 강했으면 좋겠어서 같이 브레인스토밍(brainstroming)을 해봅니다. 몇 가지 아이디어가 나왔는데 그중에 막 엄청 와닿는 카피는 없네요. 좀 더 생각을 해보기로 하고 미팅을 마무리합니다. 

 

 

2:15p.m. 설문 원고 초안

지난주 금요일에 브레인스토밍 한 프로젝트 아이디어를 모아 예비연구(preliminary research)를 하려고 합니다. 연구 내용이 콘텐츠니까 콘셉트 조사(concept research)하면 좋겠네요. 콘셉트는 설문조사로도 충분히 될 거 같아요. 설문지를 현재 사용자들에게 이메일로 돌리기로 방향을 잡고 설문 원고 초안을 적어봅니다. 일단 사용자들의 서비스 사용 경험에 대한 질문으로 시작해서 지난 몇 번의 경험에 관해 몇 가지 질문을 던져 봅니다. 현재 우리가 제공하는 서비스에 문제점이 있는지 묻고, 제공하지 않는 서비스 중에 필요한 것이 있는지도 물어보죠. 그리고 마지막에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가상의 서비스를 설명하고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봅니다. 질문은 가급적 중립적이어야 하고 자세해야 합니다. "이런 서비스가 있다면 얼마나 사용할 것 같으세요?"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요?" 같은 질적 질문이 굉장히 많은 아이디어와 사용자 정보를 주죠. 다음 미팅까지 시간이 없어서 대충 초안을 완성합니다. 

 

 

3:00p.m. VOA Communication Strategy 미팅

미팅에 접속해서 위원 회원들과 인사를 나눴습니다. 다음 주 수요일에 있는 프레젠테이션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데 벌써 스트레스 지수가 치솟는 게 느껴지네요. 다른 멤버들이 이것저것 의견을 내는 동안 저는 한마디밖에 못하고 웃고만 있었습니다. 울고 싶네요.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만나서 발표전 마지막 점검을 하기로 합니다.

 

 

3:30p.m. 마무리 정리

기운이 쭉 빠졌어요. 머리가 복잡하고 다음 주 매니저 미팅에서의 발표가 걱정되기만 합니다. 일단 오늘 하루가 거의 끝이 났으니 대충 마무리하고 최대한 빨리 노트북을 닫는 게 제 목표예요. 하루 동안 쌓인 이메일을 확인하고 필요한 곳에 답장을 보냈어요. 내일 다시 자세히 봐야 하는 이메일은 마크를 해둡니다. Slack(사내 채팅앱) 그룹 메시지에 뭔가 기발하고 위트 있는 답장을 달고 싶어요. 2분을 넘게 고민하다가 답장을 달았는데 1분도 안돼서 내 메시지에 웃는 이모티콘이 5개가 달립니다. 기분이 좀 좋아졌어요. 오늘 하루 마무리 정리가 끝났든 안 끝났든 상관없어요. 대충 노트북을 덮고 위층으로 뛰어 올라가 침대에 눕습니다. 뇌가 튀겨진 기분이네요. 어쨌든 오늘 하루도 진짜 생산적인 하루였습니다. 그럼 됐죠, 뭐.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기로 해요, 우리.

 

 

 


 

미팅이 많은 날은 진짜 하루 종일 미팅만 하다가 끝나기도 해요. 오늘은 미팅이 많긴 했지만 생산적인 워크 세션(work session) 미팅도 있었으니 기분이 좀 좋습니다. 좋은 하루였든 안 좋은 하루였든 요새 특히 일 끝날 때가 되면 머리가 과부하되는 날이 많아요. 일을 너무 열심히 하는 거 같습니다. 좀 설렁설렁해야겠는데 벌려놓은 일이 또 엄청 많네요. 

 

미팅이 많은 날은 정말 하루종일 카메라 앞에서 얘기하느라 피곤해요.

 

최근에 인턴 두 명과 로컬 디자인 모임에서 만난 주니어 디자이너 두어 명을 멘토링 해주면서 쉐도윙(shadowing)의 힘을 느꼈어요.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는 이런저런 일을 하는 사람이야,라고 말해주는 것보다 하루 이틀 제가 들어가는 미팅과 워크 세션에 데리고 다니면서 직접 느끼는 게 확실히 다르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에 공개한 저의 하루 일과를 보고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가 하루 종일 무슨 일을 하는지 좀 더 자세히 상상해 볼 수 있길 바라요. 

 


 

미국에서 UX 디자인을 하고,

일 벌이기 좋아해서 퇴근 후 늘 바쁩니다. 

우리 함께 경제적 자유와 은퇴의 꿈에 다가가 보아요!

 

노마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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