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업계 종사자 거나, IT와 가깝게 일하는 사람들은 "사용자 경험", "유저빌리티(usability; 사용성)", "사용자 중심" 등의 단어를 들어봤을 거 같아요. 좋은 사용자 경험이 뭐길래, 지난 십몇년간 이렇게나 주목을 받은 걸 까요? 이제는 사용자 중심 디자인이 마치 성공으로 가는 열쇠처럼 여겨지죠. 많은 회사들이 많은 돈을 들여서 사용자 연구부서와 디자인 부서를 지원합니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요.
저는 UX 디자이너입니다. 운이 좋게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IT 회사에 취직을 했고 UX 디자인에 대해 배우게 됐어요. 미대를 나왔지만 순수미술을 전공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디자인과는 별 상관없는 스킬들을 배웠죠. 하지만 다행히 제 첫 IT 매니저는 순수미술과 디자인의 차이를 몰랐고, 저와 제 고삐 풀린 예술가 정신머리를 같이 고용해서 디자인 업무를 줬어요. 제 첫 디자인 업무는 옆 부서 디자이너의 도움을 받아 연구결과를 토대로 완성했습니다. 하지만 돌아온 피드백은 "이 파란 박스가 별로지 않아?" 였어요. 저는 혼란스러웠어요. 파란 박스는 브랜드 기준이었고, 그보다도 중요한 건, 저는 인터페이스(UI)가 아니라 정보구조(information architecture)에 대해 발표를 하는 중이었거든요.
많은 디자이너들이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디자인이 무엇인지, 그리고 사용자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우리 주변엔 모르는 사람들이 많죠. 사실 사용자 중심으로 디자인을 한다는 게 회사가 기존에 일하던 방식을 통째로 바꾼다는 것을 이해하는 회사는 많이 없어요. 많은 회사의 관계자들은 소비자가 업계 용어를 이해하지 못한다거나 새로 나온 신용카드 베너가 사용자의 업무를 마치는 데에 방해가 된다는 걸 이해하지 못하죠. 우리는 "그 아이디어는 좋은데, 일단 쉬운 것부터 먼저 고치자" 라던가 "그냥 뭔가 마음에 안 드는데?"라는 디자인에 전혀 도움되지 않고 주관적인 의견을 늘 듣습니다. 이해관계자들은 변화를 귀찮아하고 엔지니어링 팀과의 대화는 너무 괴롭죠. 기획팀은 디자이너에게 합당한 크레딧을 주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저는 경험도 학위도 없는 신입 디자이너로서, "왜 디자인을 할 디자이너가 필요해서 나를 뽑아놓고 제대로 된 디자인 업무를 시키지 않는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어요. 불합리적이고 이해가지 않는 상황이 답답했죠. 여러 회사와 팀을 옮기며 일을 해 본 지금은, 기업문화가 디자이너와 관계자의 협업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동안 여러 가설과 내 업무를 좀 더 쉽게 만들어주고 디자이너로서의 입지를 세워 줄 방법들을 여러 개 실험해봤어요. 내 역량과 영향력을 넓히는 방법에 대해 몇 년간 많은 동료 디자이너들과 대화하고 연구한 결과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공통점에 집중하자".
지금 관계자나 팀원들과의 협업에 문제를 겪고 있는 디자이너라면 제가 드리는 몇 가지 팁을 따라 해 보세요. 어제보단 나은 내일을 만들 수 있길 바라요.
조직에서 내 영향력을 넓히는 방법
첫 번째 팁: 팀 활동에 참여하세요.
독자가 UX 디자이너라면 사용자들을 위한 기발하고 편리하면서도 유용한 상품을 만드는 게 일하는 데 있어서 주된 목적이겠죠. 변화를 만들고 싶고 더 빨리 변화를 만들고 싶다면, 우리는 팀원들의 도움과 서포트가 필요해요. 많은 사람들이 '일은 일'이고 '회사 동료는 회사 동료일 뿐'이라는 말을 하죠. 하지만 관계를 쌓고 다지는 것만큼 빠르게 내 아이디어를 들어주고 편을 들어줄 사람을 만드는 방법은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니까요.
혹시 엔지니어링과 함께하는 팀 미팅에 몸만 참석하고 있진 않으신가요? 남발되는 전문용어에 점점 흐려지는 정신을 꽉 붙들고 디자이너로서 궁금한 기술적인 질문을 하나씩 물어보세요. 다른 팀과의 대화를 "디자인"이나 내가 원하는 목표를 방향으로 주도해서 대화에서 나의 영향력을 넓혀보는 연습이 필요해요. 기업 전체에 영향력을 끼치는 건 불가능해 보이지만 한 팀의 분위기나 다이내믹을 바꾸는 건 훨씬 쉽겠죠.
현재 본인의 팀이 건설적인 피드백(constructive feedback: 근거가 있는 주장)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면, 먼저 개발 데모나 기획 전략 미팅에서 건설적인 피드백을 줘보세요. 의견을 낼 때에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문제를 접근하면 상대방의 전문분야에서 "초짜"의 시각이 아니라 "디자인 전문가"로서 동등한 대화를 하기가 더 쉬워집니다. 디자이너의 시각으로 다른 팀원의 일에 도움을 줄 때 협업이 이뤄지고 서로의 업무가 얽히게 돼요. UX 디자이너가 어떻게 다른 팀 업무의 결과를 향상할 수 있는지 보여주세요. 관계를 한번 잘 다져놓으면 그 이후에도 계속 디자이너의 아이디어를 다른 팀 기획에 포함시키기가 쉬워집니다. 한 명의 기획자를 돕고 나면 작은 기획팀으로 영향력을 키워보세요. 다른 팀도 마찬가지예요. 작게 작게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넓혀나가서 내 영향력을 키우는 전략은 인내심이 필요하지만 효과가 확실합니다.
두 번째 팁: 내가 쓰는 언어를 대상에 따라 알아듣기 쉽고 적절하게 바꾸세요.
독자가 UX 디자이너라면 당신은 사용자를 위해 일을 하겠죠. 하지만 당신과 같이 일을 하는 사람들은 관계자와 팀원들이라는 걸 잊지 마세요.
연간 재무관리팀 미팅이나 백엔드(back end) 팀 미팅에 참석해서 그들이 하는 얘기의 절반도 채 이해하지 못하고 앉아있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저는 집중해서 그 내용을 따라가려고 애쓰다가 머리가 터지느니 차라리 허공을 바라보며 멍을 때릴 때가 많습니다.
자, 상황을 바꿔보죠. 디자이너가 엄청나게 기발한 아이디어를 기획했어요. 현재 조직이 가장 골치 아파하는 문제를 풀 핵심적인 기획이에요. 이 문제와 해결방안에 대해 관련 있는 모든 데이터와 연구결과를 취합해서 프레젠테이션을 했습니다. 사용자 정보를 취합해 양적 자료와 질적 자료도 첨부했죠. 프레젠테이션에 참석한 관계자들은 흥미로워했어요. 좋은 발표였다고 도 말했습니다. 하지만 발표가 끝난 후, 아이디어를 채택해서 투자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이런 경우는 내 이야기를 듣는 대상이 어떤 사람들인지 돌이켜봐야 합니다. 내 발표에 참석한 사람들이 무엇에 관심이 있을지 생각해 보세요. 만약 내 프레젠테이션 내용이 청중의 관심분야를 다루지 않거나 그들이 쓰는 언어를 사용하지 않았다면, 다음 발표에서는 다루는 내용을 바꾸지 않더라도 내가 사용하는 단어와 언어를 그들이 더 이해하기 쉽게 바꿔보세요. 저는 사실 재무팀 미팅 내용에 손톱만큼도 흥미가 없습니다. 하지만 꼭 참석해서 최신 데이터와 그들이 쓰는 단어나 문장을 적어와요. 그리고 제가 그들과 협업할 일이 생기면 수첩에 적어둔 그 단어들을 취합해 내 이야기를 풀어나갑니다. 저는 사용자들을 위해 일을 하지만, 결국 회사랑 관계자의 도움이 필요하니까요.
세 번째 팁: 관계자들에게 공감해 보세요. 그들도 사용자에게 공감할 거예요.
독자가 UX 디자이너라면 당신은 사용자를 대변하죠. 디자이너는 연구도 다 끝나고 사용자들도 만족한 디자인에 관계자가 반대를 할 때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화장실에 가서 물을 틀어놓고 욕을 할 수도 있고 회사가 끝나고 소주 한잔 마시면서 한탄을 할 수 도 있지만, 우리 어제보다 더 나은 내일을 위해 다른걸 한번 해보도록 해요.
한 발짝 뒤로 물러나 보세요. 우리 시각을 넓혀봐요. 관계자를 내 사용자라고 생각해보는거예요. 그들이 가진 목표와 문제점을 살펴보고 공감해보려고 해 보세요. 그들은 누구고 무슨 목표를 가지고 있나요? 어떻게 하면 당신의 아이디어를 그들이 더 가깝고 흥미롭게 느낄 수 있을까요? 어떻게 당신이 그들의 신뢰를 얻고 든든한 '내 편'으로 만들 수 있나요? 관계자에게 그들이 가진 목표에 대해 물어보세요. 그들이 이뤄야 하는 목표 밑 핵심 성과지표(KPI) 등을 알아보고 이해한다면 내 목표와 그들의 목표의 결합점을 찾는 일은 훨씬 쉬워질 거예요.
당신의 디자인이 어떻게 관계자가 목표를 달성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관계자의 부서가 얻을 수 있는 재무적 이득이라던지 손해 예방 등에 새 디자인이 기여를 할 수 있을까요? 마케팅에 따른 간접적인 기대치도 좋고 업무 효율 향상에 따른 직원들의 업무 시간 단축이라던지 업무처리 능력에 대한 기대치도 좋아요.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당신을 돕고 싶고 도울 수 있다는 메시지예요. 그 메시지만 전달하더라도 관계자는 좀 더 흥미를 갖고 디자인을 재 평가해볼 겁니다. 그리고 당신이 변하지 않고 계속 돕고 싶단 메시지를 전달하면 언젠간 당신을 지지할 거예요.
지난 몇 년간 내 기업, 사용자, 업무에 도움이 되는 기업 문화를 만들고자 이런저런 시도를 많이 해봤어요. 많은 성공과 실패가 있었죠. 조직이 천천히 사용자와 디자이너를 이해해 나가는 변화를 보면서 가장 크게 배운 점은, 변화는 참 느리다는 것. 하지만 그 변화의 영향력은 정말 크다는 것.
결국은 사람이 하는 일이더라고요.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엄청난 성과도 그걸 지지해주고 도와주는 팀이 없다면 큰 의미를 만들어내지 못했어요. 내 이야기를 좀 더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이 한 명만 늘어나도 내 일이 아주 많이 쉬워지는 것을 여러 번 경험하고 나선, 결국 기업이나 조직의 문화에 변화를 가져오는 것은 사람 간의 좋은 관계와 믿음이라는 생각이 생겼습니다.
회사가 이해하는 "사용자 중심 경험"과 저의 목표는 아직도 일치하지 않고 저는 아직도 끙끙대는 중입니다. 디자인 워크숍, 디자인 리더십 회의, 디자인 강의, 디자인 세미나 등 수많은 교육형 미팅을 기획하고 이끌고 있어요. 변화는 더디지만 오늘도 일어나는 중입니다. 매일 디자인에 대한 팀의 이해도를 높이고 디자이너가 팀을 어떻게 도울 수 있는지 알립니다. 그 결과, 팀원들의 지지를 얻고 도움을 받아 이번 달엔 지난달 보단 좀 더 빠른 속도로 사용자들을 위한 일을 해내고 있습니다.
저는 사용자 경험 디자이너이고 제 목표는 사용자를 기쁘게 만드는 일이니까요.
미국에서 UX 디자인을 하고,
일 벌이기 좋아해서 퇴근 후 늘 바쁩니다.
우리 함께 경제적 자유와 은퇴의 꿈에 다가가 보아요!
노마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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