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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디자이너

일 잘하는 디자이너의 업무보고서

by Nomad Designer 2021. 9. 3.

상사나 관계자한테 대차게 깨진 경험이 있나요? 디자인 크리틱에서 맨탈이 너덜너덜해진 적이 있으신가요? 발표 후 그냥 사표 쓰고 싶으신 적 없나요? 

 

저는 신입 디자이너 때 자주 그랬어요. 디자인 발표가 있는 날이면 신경은 곤두서는데 머리는 안 돌아가서 질문에 제대로 답도 못하고 비평을 능숙하게 받아들이지도 못했죠. 발표하러 회의실 앞에 서면 관계자들의 눈초리가 너무 무서워서 한없이 작아만 지던 시간이었어요. 

 

 

돌이켜보면 잘못한 것도 없었는데 왜 그랬는지 몰라요. 디자인과 '나 자신'을 구분하는 게 어려웠던 거겠죠? 디자인에 대한 질문이 저 개인에 대한 의구심이나 못 믿음직함 정도로 느껴졌던 거 같아요. 그 경계를 명확히 하고 기존의 '자식 같은 디자인'따위 개나 줘버린 이후 일이 참 쉬워졌어요. 이제 제가 만드는 디자인은 내 능력이라기 보단 사용자 데이터와 사용자 니즈의 종합세트 정도의 의미인 거죠. 그래서 그런지 내가 만든 디자인이지만 참 마음에 들지 않아요. 

 


 

제 첫 직장이 제네럴모터스였는데 저의 멘토 역할을 해준 디자이너 분이 계셨어요. 성함은 마크. 표정이 늘 느긋하고 말투도 느릿하신 중년이셨는데 정말 옆집 아저씨처럼 늘 차분하고 자상하게 제 질문에도 답해주시고 UX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성장해야 할지 많은 가이드와 도움을 주셨죠. 그분이 말씀하시는 단어, 발표할 때의 표정 등을 보며 혼자 열심히 수첩에 적고 공부했던 기억이 나요. 그중 그분이 가장 멋있어 보일 때가 업무 보고를 할 때였어요.

 

그때 새내기 디자이너였던 제가 마크 아저씨의 업무 보고 시간에 적어뒀던 노트 내용을 나눠보려고 해요. 그때는 그냥 매일 따라다니던 디자이너 관찰 일기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시간이 흘러 언제가 예전 노트를 뒤적이다 찾아서 읽어보니, 그분 참 일 잘하셨구나, 싶더라고요. 마크 아저씨의 업무 보고 관찰지, 시작할게요!

 


 

일 잘하는 디자이너의 업무보고서

Presenting the problems, 문제 제시:

업무 보고에 앞서 팀이 해결해야 하는 문제를 간단히 소개해요. 사용자가 어떤 문제를 겪고 있는지, 혹은 시스템에 무슨 문제가 있는지 나눔으로써 보고를 받는 사람들에게 디자인의 방향과 목적을 상기시켜주는 겁니다. 사용자 자료가 있다면 공유하고, 가장 중점이 되는 문제들을 나열해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들에 우선순위를 매겨줍니다. 이때의 우선순위는 적용이 쉽거나 low effort, high impact (적은 노력으로 최대 효과)등의 분석 등을 제외한 사용자 불편사항이나 시스템 에러 위주로 나열합니다. 

 

Baseline data, 기준자료 설명:

이어, 경쟁 기업이나 다른 제품들은 어떻게 비슷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정리한 기준자료를 설명합니다. 다른 회사에서 반복적으로 쓰고 있는 해결 방법에 패턴이 있다면 반드시 명시하고, 독창적인 해결방법을 가지고 있는 사례들도 정리해서 설명해요. 거기에 덧붙여 우리 제품이 어떤지를 비교합니다. 현재 문제에 관련된 사용자 정보나 메트릭(metrics; 측정 항목)등이 있으면 그것도 빠르게 나눠요. 보고를 받는 사람들에게 기준점을 제시하는 거예요. 

 

Design wireframes, 디자인 설명:

이어 우리 제품이 어떻게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 디자인 방안을 제시합니다. 와이어프레임이나 컴포넌트(components), 혹은 프로토타입(prototype)등을 이용해서 디자인을 보기 쉽게 설명해요. 이때, 중요한 점은 보고를 받는 사람들이 질문이나 피드백을 던져도 보고가 산으로 가지 않도록 중심을 잘 잡고 설명해야 합니다. 유저 플로우(user flow)를 설명하는데 버튼 위치에 대해서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관계자의 말에 반박하며 휩쓸리지 말고, "예, 그런 방안도 하나의 옵션이죠," 등의 오픈 앤딩 리액션만 남기고 보고를 계속 진행합니다. 물론, 좋은 피드백이 있으면 까먹지 않도록 따로 노트해두는 것도 잊지 마세요!

 

Usability research, 유저빌리티 리서치 결과:

특히 관계자들이 많이 참석하는 보고라면 유저빌리티 리서치는 미리 끝내 놓는 게 좋겠죠. 유저빌리티 리서치 자료는 관계자들이 디자인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말을 해도 "연구결과 유저들 반응이 이러했다"라고 한마디로 모두 조용히 시킬 수 있는 비장의 무기이니까요. 전쟁에 나갈 때 가장 효과 있고 중요한 무기를 챙기듯, 디자이너도 발표를 할 때 디자인의 '이유'와 '확인'이 되는 자료를 준비해야 합니다. 

 

North star idea, 궁극적 목표:

자, 현재까지의 진행사항에 대한 모든 이야기를 마쳤으니 그다음은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 완벽하고 완성된 디자인이란 없어서 모든 제품에는 그다음 목표가 있어요. 현실적으로 바로 다음 단계 디자인 아이디어를 나눠도 좋고, 더 한 발짝 나아가서 궁극적이고 이상적인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를 나눠도 좋아요. 결국 모든 이야기는 스토리텔링이 참 중요한데, "과거와 현재 이러한 문제가 있어서 이 디자인이 그 문제를 해결했고 유저들이 컨펌했습니다. 이후에 이번 디자인에서 이러한 기능을 좀 더 보강해서 이렇게 발전시키면 이만큼의 이익을 기대할 수 있고, 그 이후에도 계속 문제점 들을 보강해서 저런 제품을 만드는 게 저희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이렇게 처음부터 끝까지의 스토리를 생각하며 이야기를 풀어나가면 보고를 듣는 사람들도 이야기를 따라 머릿속으로 그림을 그려볼 수 있겠죠. 

 

 


 

 

결국 스토리텔링이에요. 제품을 디자인하듯 보고도 보고받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디자인을 해보면 어떨까요? 보고를 받는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상상하며 흥미를 잃지 않고 따라올 수 있도록 보고서나 발표에도 스토리를 짜 보세요. 정보를 이야기로 풀어내는 보고서와 흐름을 생각하지 않고 자료와 정보만 가득한 보고서는 읽는 사람의 흥미나 내용에 주목하는 정도가 다를 거예요. 

 

디자인 발표나 보고서 제출을 앞두고 계신다면 내가 가진 정보들과 내용을 이어 보세요. 어떤 이야기를 만들 수 있나요? 내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에게 어떤 결말을 제시하고 싶으신가요? 앞을 내다보고 다음 단계를 이야기하는 디자이너들이 끊임없이 성장하고 미래의 제품을 만들 수 있어요. 일잘러. 독자도 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 UX 디자인을 하고,

일 벌이기 좋아해서 퇴근 후 늘 바쁩니다. 

우리 함께 경제적 자유와 은퇴의 꿈에 다가가 보아요!

 

노마드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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